퇴근 후 집 앞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옆 반 선생님이었다. 우리 반 학생의 어머님이 옆 반 학생에게 왜 우리 딸에게 함부로 말 했냐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이미 예전부터 투닥거렸던 사이였고 부모님들 간에 갈등의 골도 깊었다. 학교폭력담당 선생님께도 연락이 왔고 담임으로서 우리 반 학부모님께 잘 이야기를 하라고 당부하셨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속상한 일을 겪었더라도 학부모님이 직접 나서면 안 된다. 분명 우리 반 학부모님이 잘못한 일이었다. 이미 상대편 학부모가 길길이 날뛰는 상태였고 아동학대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어머님의 사랑으로 한 일이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설명해야 했다. 학생들의 다툼도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촉즉발에 상황에서 내 선택은! 오로지 우리반 학생과 부모님 편이되어주는 것이었다.
"어머님 많이 속상하셨죠? 우리 반 여학생 얼마나 예쁘고 바른 학생인지 제가 잘 압니다. 옆 반 아이가 왜 그랬을까요? 저도 참 마음이 아프네요. 저는 우리 반 여학생 편입니다. 어머님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땐 앞으로는 꼭 먼저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저희 교사들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어머님 편입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내일 여학생이 학교에 오면 제가 잘 위로해주겠습니다."
이 후에 아버지께서도 전화하셔서 다시는 그 쪽 가족과 엮이고 싶지 않다며 마음을 내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으셨고 나는 어머님께 했던 말을 똑같이 하였다. 다음 날 여학생에게 말했다.
"이 학교에서 누가 너를 가장 잘 알고 있지? 이 학교에서 어떤 어른이 너를 가장 잘 지켜줄 수 있지? 담임선생님이야. 나는 오로지 네 편이야. 앞으로 그런 속상한 일을 당하면 바로 선생님한테 달려오는거야. 알겠지?"
이렇게 문제는 잘 해결되었고 어머님은 상담주간에 오셔서 정말 감사했다며 무한 칭찬을 해주셨고 그 해 나의 결혼식에 유일하게 오셔서 축하해주시고 축의금까지 주셨다.
그 다음 해에도 우리 반 남학생과 옆 반 남학생이 대판 싸우는 일이 있었다. 부장님께 가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담임은 무조건 자기 반 학생 편을 들면서 부모님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달라고 하셨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무조건 내 편이야 라는 믿음을 학부모님께 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둘이 싸웠더라도 절대 상대방 아이의 입장을 대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지지부진 했던 둘 사이의 관계는 두 부모님 간의 통화를 끝으로 또 잘 해결되었다.
내가 우리 반 학생들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없을 땐 참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우리 반 여학생 둘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 6학년 학생들한테 맞았다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누가 때렸는지도 모르는데 맞은 게 맞냐? 네가 5학년이니까 그냥 넘어가라고 했다. 나에게도 그런 과오가 있었다. 여학생은 자기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고 어머님이 전화를 하셔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셨다. 모든 6학년 반을 돌며 우리 반 여학생을 때린 학생을 찾아냈고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확실해진 것은 만약 우리 반 학생이 다른 학년이나 다른 반과 싸웠다면 무조건 우리 반 학생이 피해를 본 것이고 다른 학생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고 정말 우리 반 아이의 편으로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생기니 더욱 그런 마음으로 교사생활을 해야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우리 반 학생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밖에 없다. 학교 폭력 담당관을 교육청에서 파견한다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그 분들은 절대 누구의 편도 될 수 가 없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변호사가 있는 이유가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부모가 되어보니 학생들을 향한 학부모님들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되었다. 자녀를 낳고 또래 부부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대편 남편이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 팀에도 딸을 낳으신 분이 계시는데 처음에 아들을 낳았을 때는 내가 이 아들을 위해서 죽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딸을 낳고 나니까 이 딸을 위해서 모두 죽일 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렇다. 이게 부모가 가질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고 자녀를 소중히 생각하는 결심이다. 어떤 상황이 오든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녀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다 지켜주려고 하고 절대 남들에게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잘 가르치고 남들 앞에서 소중히 대해주고 갈등이 생겼을 때는 오직 자녀 편을 들어주는 마음이 사랑인 것이다. 누구하고 싸우고 왔다고 하면 자초지종을 들어야 하고 잘못한 것은 확실히 알려주어야 하지만 맨 처음 가질 마음은 우리 아들이 입은 상처에 대해서 이해해주고 감싸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은 막 욕을 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셨다.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음식 먹는다고 더러워지는 게 아니라 너희들처럼 속에 있는 더러운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게 더러운 거라고 하셨다. 자기 제자들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 방 먹이는 것을 보여주셨고 제자들을 보호해주고 사랑하셨다는 것을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볼 수 있다.
군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선임들끼리의 불문율이 존재했는데 다른 팀의 후임이 잘못된 행실을 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훈계하거나 따로 불러내서 뭐라고 하지 않고 무조건 그 팀의 선임에게 얘기했고 꼭 자기 팀에서 해결하게 했다. 실제로 내가 후임 시절에 이런 저런 실수를 했을 때마다 꼭 우리 팀 선임들에게 훈계를 들었지 다른 팀 선임들이 직접 얘기한 적은 없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지만 우리 팀 선임이 다른 선임들에게 카바를 많이 치면서 자기가 잘 이야기 할테니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팀이 잘 되기 위해서 후임을 챙기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선임이 된 후 우리 팀 후임이 다른 팀 선임들에게 욕을 먹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어서 더 상세히 잘 얘기하고 격려해주었던 것 같다.
아내는 서로의 편을 들어주는 것에 대한 개념이 확실했다. 아내가 초등학생 때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상급생 남학생이 안 비키냐고 시비를 걸었고 그 당시 아내의 뺨을 때렸다. 그 얘기를 들은 지금의 장모님은 아침 일찍 아내와 학교에 가서 중앙현관에 앉아서 그 남학생을 찾아냈고 교실에 들어가셔서 그 아이의 뺨을 똑같이 때리셨다. 내가 교실의 교사였다면 얼마나 깜짝 놀랬을까.. 방법은 과격했지만 아내는 그 때 확실히 알았다고 한다. 뭐든지 엄마한테 얘기하면 다 들어주는구나! 엄마는 확실한 내 편이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세 명의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지금도 정말 끈끈하게 느껴지고 지금 그것을 사위인 나에게도 해주시는 장모님의 그 마음이 정말 든든하다. 잘못을 해서 혼내더라도 내가 혼내는 게 맞지 남이 혼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거 아니겠는가?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내 편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을 확실하게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편에게 신뢰감을 주고 사랑하는 의미로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옆 팀 인턴이 실수로 흘린 종이 때문에 장그래가 오차장에게 혼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 오차장이 진실을 알게 되고 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한 상태로 옆 팀 사람들한테 막 화를 낸다. "니네 팀 애가 풀 묻혀서 흘리는 바람에 우리 애만 혼났잖아!" 장그래는 집에 가서 "우리 애"를 되뇌이며 히죽거린다. 그 때는 그 장면이 그냥 웃겼지만 이제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입장이 다 이해되기에 참 따뜻한 장면으로 기억되어있다.
남편과 아내 관계는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예로 들고 싶다. 퀸즈 그룹 집안 회장의 손녀 홍해인과 남편 백현우의 사랑 이야기 였는데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홍해인의 남동생이 가족끼리 회의하는 자리에서 매형 백현우에게 기분 나쁘게 말을 한 것을 듣고 집 마당에 나가서 남동생을 패버린다. "한 번만 더 내 남편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진짜 죽여버린다." 라며 깡패 같은 누나의 모습을 각인시킨다. 서먹한 부부사이라 할지라도 남이 자기 남편에게 그렇게 말한 것을 보고 바로 응징해버리는 모습 속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동생을 패는 모습에서 사랑이 느껴졌다는 게 웃기지만 정말 그렇다. 우리 아내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만약 누군가 내 남편을 욕하면 내가 가서 밟을 거라고 말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자기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연인의 이야기를 남한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여자가 안주거리가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내 아내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철저히 무시해줄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내 편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전주에서 대학생 생활을 하며 혼자 지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이 안 간다는 말을 아내가 한다. 그 때에 나는 자유롭고 즐거웠지만 결코 지금 나의 상황만큼 대접받지 못했던 걸 지금 생각해보면 느낄 수 있다. 가족이 점점 많아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부모 없는 사람들이 정말 안타깝지만 부모 있는 사람들보다 더 무시당할 확률이 크다. 실제로 학교에서 어떤 학생은 깨끗한 새 옷을 매일 입고 오지만 어떤 학생은 3일 내내 같은 옷을 빨지도 않고 입고 오는 모습을 보며 그러면 안 되지만 맘 속으로 비교하는 마음도 분명히 생긴다.
내 아들이 태어나고 같이 살아가면서 처음엔 항상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아이가 조금 크다보니 이제 이 정도까진 괜찮겠지 하며 옷을 입힐 때나 로션을 바를 때 힘을 더 주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아내와 장모님이 보실 때 아들을 함부로 막 대하는 것 같이 보인다며 많이 혼났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다보니 빨리 하려고 휙휙 하는 동작들이 아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고 남들이 그 모습을 보면 앞으로 내 아들에게 똑같이 함부로 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소름이 끼쳤고 정말 미안했다. 내가 우리 자녀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가 결정된다. 학생들에 관한 일로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괜찮다고 그냥 넘어가시라고 만약 그러신다면 나도 학생의 일로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학생의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사실 되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엄청 차별했던 적은 당연히 없지만 우리 반에 학생이 같은 학교에 선생님이시면 더 눈치도 보게 된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학생이 있다면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생기게 된다. 그 부모님이 학생을 얼마나 애지중지 대하는지를 직접 보게 되면 교사인 나도 절대 그 학생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하는 말이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된다. 세상에는 사랑도 있지만 질투와 미움도 있다. 사람은 남이 피해를 받고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이상한 쾌락을 느끼고 남을 깎아내리며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내 편이 필요하다. 어딜 가더라도 나를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올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을 사는 것이 든든하지 않겠는가? 주변을 둘러보자. 내 편이 있는가? 내가 편들어줘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최선을 다해 잘 해주자. 그리고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자. 내 편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말이다. 마음을 같이 하고 한 팀이라는 생각으로 잘해주자. 외부의 공격으로부터도 지켜주자. 내 편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절대로 남의 편이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