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교육사회 강의 중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만약 너희들이 나무와 대화를 해보지 않았다면 초등교사를 할 자격이 없다. 여기 앉아있는 너희들은 나무와 대화해 본 적이 있느냐?"
저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같은 과에 동기가 손을 들었다.
"저 해본 적 있어요."
"오! 언제 해 봤니?"
"재수할 때요"
"무슨 대화를 했니?"
"아... 재수하느라 너무 힘들었었는데요. 잠깐 밖에 나와서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옆에 나무가 있었어요. 나는 지금 이 짧은 순간도 이렇게 힘든데 너는 한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지키고 있었니? 이런 얘기를 하게 됐어요."
"크으~ 그랬구나 참 멋지다. 역시 재수를 안 해본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이제는 내가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얘들아 너희 중에 나무와 대화를 해본 사람이 있니?" 학생들은 어리둥절해 하지만 나는 빛나는 눈빛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나무와 대화를 할 줄 알아야 인생을 깊이 있게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단다!"
나무와 대화를 해본 사람들은 이미 많이 있다.
주변에 심어진 수많은 나무들을 바라봐
아무도 알아주진 않지만 우뚝 서 있잖아
로이킴의 북두칠성이란 노래 가사 중 일부이다. 나무를 보면서 이런 가사를 쓰셨을텐데 아마도 나무와 대화를 해보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도 분명 나무와 대화 나눠보았을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와 대화하며 위로 받고 깨달음은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나무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힘들었던 대학생활을 잘 견뎌내고 졸업 후에 고향에 내려갔는데 그 때 보았던 벚꽃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출근을 했었는데 내 인생이 이제는 꽃길만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다. 그러다 벚꽃잎이 다 떨어지고 푸른 나뭇잎이 돋아날 무렵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인생에서 제일 젊고 튼튼하고 아름다울 때도 점점 지나가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게 봐주는 꽃피는 시절은 금방 지나가는구나. 나뭇잎이 돋아나면 이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진 않지만 더워지는 날씨와 뜨거운 햇살을 가려줄 그늘이 되어주고 새가 와서 깃들고 쉬다갈 수 있겠네. 나도 벚나무처럼 화려했던 시절을 지나보내면 이전만큼 관심받으며 살지는 못하겠지만 푸르르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내 주변 사람들을 쉬게 해주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3월의 벚꽃보다 5월의 벚꽃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 해 7월 군대를 갔다. 육군훈련소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다른 전우들이 다 먹을 때까지 나무 아래에서 기다렸는데 가만히 서 있는 동안 고개를 들어 나뭇잎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나뭇잎 하나 하나가 모여서 큰 그늘을 만드는구나. 나뭇잎 하나는 보잘것없고 쓸모없이 느껴지고 하나 없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저렇게 나무에 붙어서 다 모여있으니까 큰 그늘을 만들어주는구나. 나 한 명 군대 간다고 대한민국이 지켜지는 건 아니겠지만 나 같은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여 군대를 이루고 그렇게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고 옆에 동기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더워 죽겠고 여기 온 것만으로도 짜증나 죽겠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고 핀잔을 들었다. 지금도 군대를 가는 후배들이 있으면 이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마냥 힘들고 싫은 군생활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나무에 대해서 공부해보고 이것저것 배워보면 정말 교훈을 얻을 것이 많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항상 고민하고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그 방법을 나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같다. 한 때 어떤 티비 프로그램에서 산 속에 있는 초등학교를 소개해주었었는데 학생들과 교사들이 산에 올라가 흙을 만져보면서 느낀 점을 서로 나누고 나무를 안아보면서 말을 걸어보는 그런 수업을 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렇게 유심히 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잊고 살다가 대학교 3학년 때 미술교과교육론 시간에 교수님이 나무를 그려보자는 수업을 하셨다. 그 때 교실 밖으로 나가서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학교 주변에 아무데나 앉아서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무의 줄기는 갈색이 아니었다. 나무의 잎사귀는 초록색이 아니었다. 나무는 마치 구름처럼 둥실둥실 대충 그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언제 내가 이렇게 나무를 유심히 오랫동안 바라봤던 적이 있었는가 싶었다. 나무 줄기의 거친 겉 표면과 뻗어있는 가지들, 질서 있게 붙어 있는 나뭇잎들을 보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궁금했다. 계속 같은 자리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수많은 학생들을 응원하지 않았을까 내심 감사가 되었다. 실과교육학 시간을 맡으셨던 교수님은 학교를 빙 돌며 모든 나무의 이름과 특징들을 다 설명해주셨다. 지금도 사실 기억하는 건 거의 없지만 길을 걸으며 그냥 지나치는 나무들에도 다 이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말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모르기에 그리고 한 번 들어서는 절대 기억할 수 없기에 오래 보고 자주 보고 그래서 나무와 대화를 나눠봐야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수원집 손자이다. 할아버지께서는 귀농하신 후 배, 감, 자두, 두릎나무를 키우시며 농사를 지으셨다.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게 될 나이가 됐을 땐 종이로 배를 감싸는 일, 나뭇가지 주워서 쌓아놓는 일, 과일을 크기별로 분류하는 일을 했다. 몸이 더 커지고 힘이 생겼을 때는 비료를 뿌렸고 수레를 끌었고 큰 기계로 잡초제거를 했고 아버지를 따라 농약줄 정리를 했다. 그래서 나는 배와 감을 안 먹는다. 우리 아내는 과일 없으면 못 사는 과일러버, 과일킬러여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감이 정말 맛있다고 나에게 건네주지만 나는 아직도 감이 정말 싫다. 대학생 시절 방학해도 집에 잘 안 내려갔었는데 주말에 과수원에서 일 하기 싫어서 그랬던 것도 있다. 결혼하고 자녀가 태어난 이후에는 이제 과수원일을 돕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키위와 감을 수확해서 나눠주시고 할아버지댁에 갈 때마다 좋은 것들로 주셔서 참 좋다. 이제 할아버지의 과수원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인다. 정말 오랜 세월 할아버지의 인생과 함께 하며 맛있는 열매들을 맺혔던 나무들을 보며 이제서야 고마움을 느낀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와 함께 해야 할 일도 매번 달라진다. 봄에는 꽃가루를 뿌려야 한다. 물론 할아버지는 벌도 키우시지만 벌만으로는 모두 수분을 할 수가 없다. 더워지면 정말 주말내내 벌초를 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생활하고 주말에는 과수원를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다녔는데 진짜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내 아버지가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나는 절대로 그 과수원 물려받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농약도 매주 뿌린다. 게다가 시기마다 종류도 다르고 배합도 해야 한다. 농사도 기술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키위는 너무 낮아서 허리 숙여야 해서 힘들고 감은 너무 높게 달려서 사다리를 타야 해서 힘들다. 게다가 비탈진 산이어서 굉장히 위험하다. 자녀들이 걱정하지만 할아버지는 비탈진 곳에 있는 감나무를 고민고민하다 베셨다. 이유인즉슨 평지에 있는 나무의 열매보다 비탈진 곳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가 훨씬 건강하고 맛있다. 그리고 더 오래됐다.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배울 게 있지 않나 싶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한다. 그리고 애정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할아버지의 세 아들들은 주말에 오셔서 열심히 일하신다. 나는 저분들보다 젊은데 왜 이렇게 체력이 안 좋지? 라고 느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감 주워서 포대기에 담고 그걸 노란 상자에 담고 노란 상자가 다 차면 들어서 수레에 올리고 진짜 하다보면 허리, 목, 무릎, 안 아픈데가 없는데 아버님들은 진짜 끝까지 열심히 하신다. 나는 한 번씩 주저 앉아서 쉬는데 말이다. 정말 노력없이 땀을 흘리지 않고 나무가 그냥 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실제로 할아버지께서 점점 편찮아지시고 자주 과수원에 못 가시게 됐을 땐 과일 양도 훨씬 줄었고 크기도 작아진 게 눈에 보였다. 올해는 농사를 잘 못지었다 라고 하시며 속상해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참 나무는 정직하구나 라고 느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신경쓴 만큼 자라고 사랑해준 만큼 좋아지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겠는가? 4개월 된 아들과 놀다보면 한 번씩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런 귀찮음과 체력 이슈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는 부모님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다. 학생들은 다 티가 난다. 부모님이 책 많이 읽어주고 많이 놀아준 학생. 그렇지 않은 학생. 보면 다 안다. 학생들의 지금 모습이 있기까지 부모님들의 수많은 희생과 관심,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아들을 낳고 더 확실히 알게 됐다.
나무에는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나무가 자라지만 추워지면 성장을 멈추면서 흔적이 남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무는 굵어지고 강해진다. 나이테가 많은 나무일수록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이케아라는 스웨덴의 기업이 있는데 그 기업의 가구들은 북유럽에 추운 환경에서 사는 나무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굉장히 튼튼하다. 그러나 열대지방에 사는 나무들은 환경이 너무 좋기 때문에 오히려 나무가 약하고 힘이 없다. 이처럼 사람도 힘든 환경에 던져졌을 때 더 강해지고 튼튼해질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나무는 뿌리라는 걸 내린다. 싯딤나무라는 아카시아 계열의 나무는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나무인데 굉장히 뿌리를 깊게 내린다고 한다. 뿌리가 깊을수록 자연재해에 잘 견디고 뽑히지 않는다. 그리고 땅 속 깊은 곳에 좋은 것까지 잘 먹을 수 있다. 나무는 겉으로 보이는 가지와 잎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훨씬 중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뿌리가 깊은 사람은 생각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뿌리가 얕으면 더 많은 땅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일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수용할 수가 없다. 뿌리는 마음과도 같다. 넓고 깊을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다.
나무는 계절마다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다음 계절을 항상 준비한다.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금방 지게 한다. 여름에는 최대한 잘 크려고 노력하고 가을에는 추워질 준비를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앙상한 모습으로 그 다음 봄을 기다린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도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지 않는가? 인생에서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있었는가? 추운 겨울 새벽 2시에 나가 자주포 시동을 키러 밖을 돌아다닐 때 정말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봄처럼 따뜻하고 달콤한 순간도 있고 여름처럼 뜨겁고 괴로운 일들을 겪기도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겪을 수 있는 더위와 추위가 싫을 순 있어도 이를 통해 다채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나무는 매 계절마다 새로운 것처럼 우리도 매년 새로워지고 자라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본다.
어느 곳을 가나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알아보고 공부할수록 아름답고 멋진 것이 나무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여러 가구들이나 물건들, 종이들 전부 나무로 만든 것이지 않는가? 나도 나무처럼 살 수 있을까? 늘 내가 있어야 하는 위치를 잘 지키고 매년 조금씩이라도 자라가며 주변에 그늘이 되어주고 열매를 내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나무처럼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잠깐이라도 나무를 한 번 바라본다.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부터 내 목표는 나무처럼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