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묵상

CT's Diary 2025. 5. 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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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멍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유행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멍 하니 가만히 있는 것을 불멍이라고 한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말을 빌리면 과거에 사람들이 지친 일정을 마치면 밤에 피운 불을 바라보며 쉬었다고 한다. 여행 프로그램에 보면 그런 장면이 종종 보인다. 캠핑을 간 출연진들이 가운데 불을 두고 둘러앉아 고기도 굽고 라면도 끓여먹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불을 본 적이 있는지 한 번 떠올려보았다. 빨갛고 노란 불빛이 한들거리며 빠르게 움직이고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타오르는 나무 장작 타는 소리도 들려온다. 타닥타닥 참 듣기 좋다. 요즘 불멍 유튜브 영상도 많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 나무가 어느 정도 확 타고 남아있는 잔불과 숯으로 변한 나무의 모습은 빨간 보석이 어른어른 움직이는 것 같다. 불 근처는 따뜻하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에 불 옆에 있으면 언 몸이 녹고 쿠킹포일에 싼 군고구마 꺼내서 호호 불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불을 피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불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는 것 같다. 실제로 100만이 넘는 구독자가 있는 여행 유튜버들도 외국여행보다 캠핑 컨텐츠의 조회수가 현저히 낮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엄청 좋아한다. 마니아층들은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먹기, 씻기, 자기 등 모든 것이 불편한 캠핑을 항상 가고 싶어한다. 그 고생을 사서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우리 아내! 하지만 최근 한옥스테이를 하며 불을 피우면서 느꼈다. 불을 피우고 그것을 보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댁에 가면 아버지가 아궁이에 불을 때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할아버지댁은 온돌이라 겨울에 항상 아궁이를 때어야 했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가 불을 피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하고 싶어서 그 앞에서 나뭇가지로 장작을 툭툭 건드리던 기억이 난다. 불을 피우면 그 위에 물 끓여서 겨울에 씻을 때 그 물로 씻었다. 굉장히 불편했지만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것을 연습했던 그 때가 가끔은 그립다. 물론 찬물 샤워는 좀...힘들긴 했다. 보일러가 편하고 좋긴 하지만 때로는 할아버지댁에서 직접 타는 불을 보는 것도 참 좋았다.

불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이것이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맘이 지금 불타고 있잖아요."라는 드라마 명대사도 있듯이 타는 듯한 사랑과 열정은 마치 불을 연상시킨다.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장작이 필요하지만 장작에다가 라이터나 토치로 불을 갖다 대어도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불에 잘 타는 신문지나 톱밥, 마른 나뭇가지들이 필요하다. 불이 붙음과 동시에 장작을 위에 쌓으면 장작이 지속적으로 불을 쐬고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면 장작도 불이 붙으며 활활 타오르게 된다. 장작이 다 타면 불이 꺼지기 때문에 장작을 계속 넣어주어야 불이 게속 타게 된다.

사람의 마음도 장작처럼 바로 불이 붙지 않는다. 그 어떤 사람도 처음 보자마자 무엇인가를 좋아하거나 열정 있게 하지 않는다. 먼저는 처음에 한 번 경험해보고 흥미를 조금씩 느끼고 계속 하다보면 관심이 점점 생겨서 나중에는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먼저 찾아서 하게 된다. 실제로 맨 처음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을 어떤 형이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든 내 넥슨 아이디는 2004년 산이다. 처음엔 별 다른 감흥없이 시작했지만 그 당시에 학교에서 친구들이 갖고 있던 가이드북도 한 번씩 읽어보고 각 직업별 스킬트리나 퀘스트들을 어머니한테 막 설명하며 재미있게 게임했던 기억이 있다. 게임에 관한 추억 하나 더 꺼내자면 던전앤파이터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당시에 중학생 때 이 게임을 알고 재밌게 해봤던 것 같다. 그 때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이 게임을 소개해주었는데 시간이 지나 우연찮게 이 친구의 캐릭터를 보았는데 엄청나게 멋진 광선검과 마치 상상 속의 주작이 환생한 듯한 디자인의 새빨간 아바타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이미 그 게임에 대해서 시들해져 있는 상태여서 "얘가 이걸 나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네...?" 싶어서 굉장히 신기했던 경험이있다. 뭐든지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 불이 번지듯이 사람의 마음이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인생을 갈아넣기도 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세상에 수많은 여가활동과 다양한 분야에는 마니아들이 존재한다. 일본말로 오타쿠말이다. 사람들은 10덕이라는 말로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런 사람들은 꽤나 행복하게 산다. 그런 삶이 올바르다거나 좋아보인다거나 그런 걸 다 떠나서 뭔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것에 끊임없이 열정을 불살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더욱이 어린 학생들이 요즘 좋아하는 것이 없고 취향이 없어서 문제인데 사람의 마음에 뭔가 불을 지르고 열정있게 만드는 것을 찾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요즘은 멋져보이기도 한다. 주말 아침에 지리산에 가보면 헬멧과 선글라스에 쫄쫄이 옷을 위아래로 입고 엄청 비쌀 것 같이 생긴 자전거를 탄 중년분들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지? 라고 이상하게 봤을 것 같은데 그 때 당시에 정말 다들 멋져보였다. 사회적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고 자녀들까지 다 잘 키운 후에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저런 취미를 갖고 지내시는 것이 대단해보였다. 물론 신앙을 가지고 더 가치있는 일에 시간과 돈을 쓴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취미든 곧바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먼저 나뭇가지와 신문지를 태우듯 조금씩 보고 들으며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점점 불길이 강해지고 온도가 오르면 두꺼운 장작을 태우며 불길이 치솟듯이 사람의 마음에 그렇게 불이 옮겨붙는다. 그렇게 장작은 자기의 몸을 마구 태우며 빛과 열을 주변에 내뿜는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에 불길이 타오르면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열정 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밝다. 하지만 한편으로 장작은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 재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마치 사람이 본인의 마음을 뺏기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을 뺏긴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뺏긴다는 뜻이다. 무엇인가 좋아서 그 마음에 불길이 치솟으면 때로는 자기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남자든 여자든 어떤 이성이 정말 좋아서 마음이 뺏겨서 이것저것 다 퍼주는 경우가 있다. 훗날 돌이켰을 때 자기가 없는 삶이었고 마음이 활활 타서 재만 남았다며 후회하는 사연이 정말 많지 않은가?

특히 열정있는 사람은 너무 뜨거운 경우도 종종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 열기에 뜨거워 다치기도 한다. 혼자 뜨거워진 냄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안에 물이 담겨있어야 쓸모가 있다. 라면이면 얼마나 감사한지! 하지만 물도 너무 뜨거우면 바로 마실 수가 없듯이 뭐든지 따뜻하고 적당해야 한다. 근데 그건 사실 쉽지 않다. 아이가 먹을 분유물을 그 따뜻한 온도로 유지하기 위해서 먼저는 살균을 위해 100'C를 끓이지만 그 물을 적정 온도까지 식히고 계속 같은 온도로 유지할 때 라비킷 소리가 더 크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가습기도 그렇다. 완전 펄펄 끓는 물이 아니라 적당한 온도로 덥힌 물을 뿜어내는 우리집 케어팟! 추운 겨울에 공기도 따뜻하게 해주는 바람직한 수증기이다.

불은 사람의 삶에 필수적이지만 불도 불 나름이다. 건조한 요즘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산불은 굉장히 무섭고 큰 피해를 준다. 불은 너무 커서는 절대 안 된다. 처음엔 작게 시작하지만 점점 커져버리면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아주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불은 잘못 사용되면 모든 것을 태우고 소멸할 정도로 파괴적이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불이 타고 있는가? 복수심에 불타고 질투로 활활 타오르진 않는가? 머지 않아 주변에 많은 것들이 파괴되는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다. 불은 어디든지 사용될 때마다 항상 작고 적당해야 유용하다. 사람 마음에 피는 불도 항상 적당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너무 크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너무 뜨거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작은 촛불일지라도 그것이 갑자기 넘어지면 큰 불이 되어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듯이 내 안에 작은 열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넘어진다면 큰 피해를 남에게 줄 수도 있다.

물론 불이 너무 커도 안 되지만 너무 작아져서 꺼지면 절대 안 된다. 한 번 불을 붙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에야 라이터나 점화기 기술이 있지만 먼 옛날 마찰력을 이용해 수도 없이 부싯돌을 부딪히고 나무를 계속 돌려야 피울 수 있는 정말 귀한 것이었다. 옛날엔 추운 겨울에 불을 꺼뜨리는 건 생명을 꺼드리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밤에 불 가까이에 모여 있을 때 꼭 장작을 조금씩 넣어주는 것을 불침번을 서면서 반복해야 했다. 불이 한 번 잘 피어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좋은 장작을 넣어줘야 한다. 그래야 불이 계속 잘 유지될 수 있다.

사람 중에는 금사빠처럽 빨리 불타오르는 사람도 있고 며칠만에 금방 싫증내고 식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 마음에 자잘한 나뭇가지와 신문지들만 있는 사람이 그렇다. 금방 타오르고 꺼지는 것은 좋지 못하다. 사람의 마음에는 두껍고 오래가는 장작이 있어야 한다. 은근히 타면서 오랫동안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좋은 연기를 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좋은 장작을 계속 채워주어야 한다. 나의 마음에는 어떤 장작이 불타고 있는가? 자잘한 불쏘시개들로 가득하다면 고약한 연기들을 내뿜겠지만 좋은 생각들로 가득한 건강한 장작이라면 그 위에서 맛있는 고기를 훈연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캠핑을 가거나 시골에서 불을 피워보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어른거리는 예쁜 불을 보며 함께 이야기 나누고 편안히 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저런 불처럼 주변을 따뜻하고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며 오랜만에 멍하니 불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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