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는다는 것
모든 게 마음 먹기 달렸다고 하는데 왜 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을 쓸까? 그리고 왜 하필 먹는다는 단어와 잘 어울릴까? 그 이유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삶의 중요한 생존의 영역이고 마음을 먹는 것도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반성하고 연초를 맞이하며 다짐을 한다. 꾸준히 운동을 하겠다거나 일기를 쓰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처음 먹은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잊혀지고 1, 2월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 왜 그럴까?
누가복음 15장에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목자는 양을, 여자는 드라크마를, 아버지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계속해서 찾는다. 사실 어린 시절에 이 성경을 읽을 땐 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양 백 마리 중에서 하나? 굳이 왜 찾지 싶었다. 물론 자라면서 사람은 무엇인가 받을 때의 기쁨보다 잃어버릴 때에 느끼는 슬픔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닫고 실제로 경험했을 때 이 말씀이 달리보였다. 사실 10개 중에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목자에게는 직업의식을 버린 것이 되고 여인에게는 결혼을 포기한 것이 되고 아버지에게는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에나 다름이 없다.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전부 다 잃은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셨다. 총 9가지의 칭찬이 있지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한 가지 책망을 하셨다. 10개 중에 하나만 빠진 칭찬이었지만 모든 칭찬이 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나밖에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사랑을 잃은 것이기에 책망하신 것이다.
왜 잃어버렸을까? 그토록 뜨겁고 힘차게 시작했던 연초, 새학기의 마음을 왜 잊어버릴까? 좀 더 쉬운 예로 외출을 하려고 이것저것 다 챙기는데 왜 꼭 하나씩 빼먹고 두고 갈까? 그 이유는 매일 마음 먹지 않기 때문이다. 매순간 자신의 물건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보이는 물건과도 같아서 있는지 없는지 매일 같이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여행 가기 전 짐을 챙길 때 종이에 써놓고 확인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마음도 그렇게 확인해야 한다.
에베소 교회는 왜 사랑을 잃어버렸을까? 왜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을 들었을까? 에베소는 미끄러지다는 말 뜻이 있는데 왜 사랑을 잃고 미끄러졌을까?
그 이유는 계속 사랑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을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에 먹는다라는 표현을 생각해보자. 먹는다는 건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정말 예뻐 어쩔 줄 몰라하며 잡아먹고 싶다 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쓰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는다. 사람은 반드시 먹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성장할수록 지혜가 생길수록 더 좋은 것을 먹으려 하고 더 맛있는 것을 먹으려 한다. 먹는 것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먹는 행위는 매일 해야만 하고 하루 중에 3번이나 한다.(간식까지 하면 더 많이..) 한 번이라도 빠지면 몸이 반응하고 무리가 간다. 게다가 굉장히 신경써야 한다. 규칙적이어야 하고 양도 적절해야 한다. 밥 먹는 것이 하도 귀찮아서 때로는 그냥 배부른 약을 먹으면 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게 된다. 왜 이렇게 매번 식사를 하게 하셨을까?
우리 몸의 배가 제 2의 뇌이다. 신경이 뇌 다음으로 많이 몰려있는 곳이 위장이어서 그렇다. 우리의 배가 채워질 때 행복하고 편안해진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뇌에도 에너지가 생기고 좋은 생각을 하게 된다. 속이 불편하면 기분이 좋지 않고 예민해지지 않는가? 행복하고 자주 웃으면 살찐다는 이야기가 사실 거기에 있다. 우리는 긴장된 자리에서는 밥을 잘 못 먹는다. 처음 만난 소개팅 자리에서 긴장한 나머지 밥을 남긴 경험이 있는가? 결혼하면 배가 나오는 남편들을 본 적이 있다면 확실히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이 있으면 위장도 편안하고 소화능력도 좋아진다. 마치 이와 같이 우리는 육신을 위해 먹는 것처럼 마음을 위해서도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루라도 빠짐없이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좋은 것들을 먹어야만 사람들이 늘 이야기 하는 초심을 지킬 수 있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는 저녁식사 자리를 함께 가지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자녀가 똑똑해지고 공부를 잘 하는 가정은 집밥을 항상 먹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외식을 하기가 쉬워진 요즈음이지만 부모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요리를 먹으며 같이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하면 배도 든든하게 채워지지만 동시에 서로 좋은 말과 격려와 조언을 주고받으며 마음이 채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는 이유는 매일 같이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해주시고 집안을 가꾸시기 때문이며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는 이유는 매일 직장에 출근하시며 퇴근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매일 매일 평생 동안 지속하시는 모습 속에서 자녀들은 부모들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된다.
물론 인생 가운데 크고 아픈 일들이 우리에게 닥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련들이 쌓일 수록 우리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다.
일례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드럼통은 처음부터 지금의 드럼통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평평한 통 상태로 처음에 만들었는데 그 드럼통은 살짝만 충격을 받거나 넘어지면 바로 터졌다. 그런데 어느 날 드럼통 제작자가 대나무가 튼튼하고 강한 이유를 살펴보다가 사이사이 마이가 있는 것에 착안하여 드럼통을 굴곡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공장에서 보는 드럼통들은 다 굴곡이 있고 튼튼하다. 마트에서 사는 통조림도 굴곡이 있어 큰 충격을 받아도 터지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굴곡이 있어야 큰 충격을 받아도 터지지 않는다.
사실 매일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어떤 계기는 분명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는 다 다르지만 그 처음 마음을 계속 지속하는 것에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지금 나의 모습이 과거에 매일 살아왔던 하루의 집합체이고 앞으로 내가 보내는 하루가 훗날의 내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항상 그들의 안에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매일 확인하지 않고 매일 사랑에 대한 묵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사랑을 잊어버렸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먹어야 한다. 그래야 잃어버리지 않는다.
가끔 집에서 이리저리 휴대폰을 들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어? 휴대폰 어디 갔지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금방 갖고 있었던 물건도 금세 어딘가에 던져두고 찾으러다닐 때가 있는데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매일 확인하고 매일 돌아보지 않으면 연말과 연초에 결심하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매일 외출할 때 챙기는 휴대폰처럼 매일 집을 나설 때 임마누엘 예수님과 함께 가도록
매일 성경 읽고 매일 기도하고 매일 내 옆에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도록
매일 운동도 해야 하고 매일 가정도 돌봐야 하고 매일 공부도 해야 하고 참 할 일도 많지만
사랑을 잃으면 전부 다 잃어버린다는 것을 잊지 않고 오늘도 내 마음 깊이 예수님을 먹어본다.
(요 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