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묵상

태어나서 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

CT's Diary 2025. 5. 2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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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걸을 때까지 한참이 걸릴까요?"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혹자는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무게가 무겁고 인간의 뇌는 신체기능보다는 인지기능 쪽에 더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갓 태어난 신생아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생아는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실 신생아 시기뿐만 아니더라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명절에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정체된 도로에 서 있는 1시간 동안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며 고군분투하는 아내를 보며 참 안쓰러웠다. 아내는 뭐가 불편한지 말도 못하는 아이를 위해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안아주다가 이런 말을 했다. "왜? 사람은 걸을 때까지 한참이 걸릴까요?"
자주 이런 말은 했었다. 아버지 앞에서도 이런 말을 했었고 내 앞에서도 했었다. 아버지는 농담처럼 "그러게, 소들은 금방 금방 일어서는데 말이다." 라고 얘기하셨지만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대가족으로 살아가는 시절에는 집안에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자녀를 봐주셨을 것이다. 아들은 첫 명절을 맞아 할아버지댁을 가서 자는 시간 외에는 눕지 않는다.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된 당고모와 당숙들부터 증조할아버지까지 전부 돌아가면서 자기를 안아주기 때문이다. 어딜가나 사랑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는 귀여운 외모를 가졌기에 자기가 안겠다고 달려드는 어른들로 인해 항상 안겨있다. 도시가 생기고 핵가족이 진행되면서 부부가 둘이서 자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아이에게는 썩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이다. 특히나 집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대화소리를 듣는 것이 말을 빨리 배우기 위해서는 정말 중요하다는 의사들의 조언도 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보다는 둘, 셋이서가 훨씬 낫고 수가 더 늘어나면 훨씬 좋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스스로 먹고, 씻고, 입고, 자는 것도 혼자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살아남는 비결은 오직 하나! 작은 몸과 뽀얀 피부, 엉뚱한 표정과 가끔 지어주는 미소에서 뿜어져나오는 극강의 귀여움! 1급 정교사 연수를 들으러 갔을 때 강사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개, 새끼 개, 호랑이, 새끼 호랑이, 독수리, 새끼 독수리. 이 단어를 들으면 생각나는 공통점이 있나요? 새끼라는 단어가 붙는지 안 붙는지에 따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이 없어도 새끼들이 살아남는 이유와 우리 학생들이 살아남는 이유가 같습니다. 학생들이 이 험난한 세상에서 이쁨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귀여움 때문이죠!" 학생들이 아무리 말 안 듣고 힘들게 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어른인 내가 이 친구들에게 잘 해줄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귀엽기 때문이다. 내 자녀인 아들은 얼마나 더 한지 정말 낳아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이제 4개월이 된 아들은 보고만 있어도 귀엽고 소리 내는 것도 귀엽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 모습만 봐도 재미있고 먹는 모습, 자는 모습, 모든 것이 귀엽다.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하지만 아이가 잘 자고 일어났을 때 싱긋 짓는 그 표정을 지을 때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한 때는 이런 모습이었겠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시절 동안 부모님의 집에 살면서 차려 주시는 밥 먹고 보살핌 받으며 살았을 것을 말이다. 좀 커서는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며 부모님께 상처 주는 말을 하고 혼자 뭐라도 해보려고 아등바등 살다가 자녀가 태어나고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도움 받지 않고 살아온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만약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내 인생은 훨씬 비참하고 불행했을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당연하겠지만 심적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정말 많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은 어느 순간 자라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옛날의 자기 모습을 잊어버린다. 신생아 시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받던 시기를 기억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감사함이 있을텐데 왜 내 자녀를 낳고 나서야 그 생각이 지금 드는지 죄송할 따름이다. 인간이 왜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없냐고 물어본다면 항상 겸손하고 감사하게 살라고 그걸 매일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미 세상에서 좋은 직업을 얻고 밥벌이 하며 산다 하더라도 사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만 해도 작은 말에 상처받고 살짝 어디에 부딪히기만 해도 멍이 드는 정말 연약하고 약한 존재이다. 문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항상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 아들이 정말 귀엽긴 하지만 정말 귀엽기만 하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 귀엽지 않은 나는 어떠한가? 누군가 보기엔 능력도 부족하고 성격도 외모도 별로다. 그렇지만 사랑 받으며 살고 있는 이유는 인간적인 조건이 아닌 누군가의 자녀이라는 이유 딱 하나 때문이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은 누군가의 자녀로서 큰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건강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자체가 이미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에 자기 목도 못 가누는 아들을 보며 알게 됐다. 아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기 몸을 뒤집어 놓고 다시 돌리지도 못하니 혼자서는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고 나도 예전엔 이랬겠다는 것을 생각하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위험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수도 없이 아내에게 주의를 받았다. 떨어뜨릴 뻔하길 몇 번 반복하니 새삼 무섭기도 하고 점점 아이를 보는 일에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나 큰 사랑이 있어야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지 계속 배우고 되새겼고 반복 숙달을 통해 지금은 혼자서도 잘 볼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물론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무엇인가 불편하면 마구 울어버리는 아들을 보면 아직도 식은땀이 온 몸에서 난다. 성경에 보면 아이일 때 땅에 떨어져 절뚝발이 된 므비보셋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 요나단의 죽음 이후 집안이 풍비박산 났고 유모에 손에 안겨 도망가다가 떨어졌다. 나도 충분히 그런 불행한 일이 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보호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지나온 모든 하루 하루의 세월마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정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많구나. 사람은 공부하고 노력해서 능력을 길러 직업을 가져야 하고 인격수양을 통해 사람들과 잘 지내기도 해야 하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근데 그게 쉬운가? 치과의사인 처제는 내 치아를 보더니 50대냐고 왜 이렇게 관리를 못했느냐며 양치질을 제대로 하라고 했다. 양치질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 혼자서 밥 해먹는 것, 집안 관리하는 것, 돈 버는 것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피부 관리에 패션까지 신경쓰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었다. 스스로 어리게만 느껴지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참 부담이었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지금까지 다 이뤄올 수 있었다.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면서 아무것도 혼자서는 못하던 사람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은 이제는 점점 혼자서 모든 것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러다 언젠간 혼자서 살겠다고 할 것이다. 그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살기를 바란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하는 아들을 보며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옆에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가 된다. 나도 누군가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감사하고 늘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혼자서 이것저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온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함께 하시는 사랑으로 지금은 누구보다 빠르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혼자서 되집기도 못하는 아들이 걸을 수 있게 더 사랑해줄 것이다. 그게 우리 아들이 아직 걷지 못하는 이유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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