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묵상

사랑이란

CT's Diary 2025. 5. 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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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사랑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사랑이요? 음... 좋은 거?" "제가 엄마한테 하는 말?" "아빠가 엄마한테 하는 말이요!" 대부분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친숙하고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단어이다. 물론 학생들이 정확한 뜻을 알려준다고 해도 학생들이 알고 있는 사랑과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성에게 느끼는 애정,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아끼는 마음, 대상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 돕고 이해하고 가까이하려는 마음이라고 나와있다. 다 좋은 말들이지만 그냥 아는 것과 그 의미를 확실히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것처럼 우리는 사랑의 의미를 찬찬히 살펴보고 생각해보면서 그 속에서 교훈을 찾고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전에 나오는 사랑의 뜻은 마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로 해석 되지만 사랑은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생 때 어떤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제목도 배우도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한 남학생이 꽃을 들고 여학생에게 찾아가 고백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여학생은 남학생을 바라보며 이런 질문을 한다.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남학생은 당황해하며 이렇게 얼버무린다.
"뭐.. 서로 좋아하고 같이 어디 가기도 하고 그러다 손도 잡고 뽀뽀도 하는거지!"
여학생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나에게 다시 와줬으면 좋겠어."
남학생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앞에서 한숨을 쉬며
"엄마 사랑이 뭐야?" 라고 물어본다.
사과를 깎아 아들에게 주시는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사랑이지. 너한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엄마에겐 있어. 그게 사랑이야."
그 말을 들을 남학생은 방에 들어가 노트에 이렇게 적는다.
'1. 사랑은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이 문장을 읽어보며 "꽤 멋있는데?" 남학생은 이렇게 읊조린다. 다음으로 기억 나는 장면은 사랑에 대해 다양한 문장을 적어온 남학생이 다시 여학생을 만나 노트를 건네고 여학생이 그 노트를 읽어보고 남학생을 인정해주는 사건이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안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학생이 참 지혜로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이성 간에 관계를 시작할 때 사랑이라는 것에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 관계가 결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 드라마를 보고 누군가가 '사랑이 무슨 뜻이야?' 라고 물어보면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야' 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러다 교회에서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선생님께서 공과말씀을 하시다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대로 말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좋은 대답이라고 하셨지만 결국 사랑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성경에 고린도전서 13장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전도사님이 되신 선생님도 사랑을 배우려면 매일 고린도전서 13장을 여러 번 읽어보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요한 목사님께서 쓰신 고전 13장 강해를 하신 사랑 책을 읽으며 사랑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었다.

물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그 때보다 사랑이 무엇인지 더 잘 안다. 글로 배우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삶을 살아가며 경험으로 사랑을 받고 사랑을 베푸는 것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정말 많이 부족한 군대라는 환경에도 들어가 보면서 사랑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더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이를 먹어가며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더 와닿게 되니 어릴 때보다 느끼는 감동도 더욱 커졌다. 그리고 부모님과는 할 수 없는 배우자와 교류하는 사랑과 자녀에게 갖게 되는 사랑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좋은 느낌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사랑을 글로 공부하고 경험으로 배우며 점점 더 사랑을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해보면서 사랑을 몇 가지 문장들로 정리한 것을 소개해보겠다.

첫째.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부모님께서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은 이와 같다. 우리가 자고 일어나 폭탄 머리를 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나 방 정리도 안 하는 지저분한 자녀일지라도 부모님은 자녀를 사랑한다. 정말 서로 좋아하고 의지하는 친구 사이에는 서로의 자취방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 저 방 구석에 3일 동안 치우지 않은 컵라면이 있더라도 치우라고 하긴 하지만 미워하진 않는다. 사람은 항상 모든 순간 정제된 상태로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로는 풀어진 모습, 약한 모습이 다 있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들을 남들인 타인은 좋아해주지 않는다. 그런 모습마저 사랑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대학생 시절 전주교회당에서는 1년에 거의 20번의 결혼식이 있었다. 매번 토요일마다 주차봉사를 하며 결혼식을 보진 못했지만 어쩜 이렇게 많이도 결혼할까 싶었다. 그러다 한 번은 결혼하신 한 봉사회 형제님과 차를 타고 수양관에 봉사를 하러 가다 이런 질문을 하였다.
"결혼을 왜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을 들으신 형제님은 막 뭐라 뭐라 하셨는데 솔직히 하나도 생각은 안 난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똑같이 자신이 존경하는 교수님께 한 대학생이 있었는데 그 교수님의 대답이 이러했다고 한다.
"네 부모님은 언젠간 돌아가신단다. 너는 네 인생에서 너의 모든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해. 인간은 그런 사랑을 받고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참 멋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 그것마저 사랑하는 것이라고 외우고 있었는데 지금의 아내와 카페에서 선을 볼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이 대학생 시절의 저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고 했는데 지금의 저는 그 때의 모습과 다를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물론 그 때 정말 이런 얘기를 했는지는 생각은 안 나지만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한다.
"나는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러 왔어요. 당신의 모습이 예전과는 달라졌을지라도 저는 그 모습까지 사랑하러 온 거에요." 라고 했다는 것을 몇몇 분들한테 얘기했었는데 다들 너무 멋있다고 왜 나한테 진작 안 알려줬냐고 그러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내는 이렇게 진지한 마음으로 나에게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그랬다.

둘째는 사랑은 give and give 이다. 사실 군대에서도 현재의 아내를 좋아하고 있는 상태에서 결혼을 하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략 3권 정도의 결혼생활에 대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거기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또 기억해놓고 있었는데 이 말도 아내에게 했었다. 아내는 처음에 나를 만날 때는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아 했었고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 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받으러 온 게 아니고 주러왔다고 했다. 사랑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give and take가 아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남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은 필시 실망을 가져오게 되고 정말 참되고 진실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사랑에 화답이 오지 않는 것은 상처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얘기를 듣고 아내는 정말 감동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살면서 사랑을 쭉 지속해 나가면서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된 사랑의 뜻은 이것이다. 사랑은 의지이다. 매일 결심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이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고 때로는 아픔이 필요하다. 왜 사랑을 희생과 헌신이라고 하는 것인지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좋아하던 찬양 중에 "눈물의 아들" 이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왜 참 사랑은 아파야만 하는지 희생해야만 하는 건지'. 예수님이라는 분의 놀라운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반드시 감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예상치 못한 큰 관심과 사랑에 감동을 받는데 큰 사랑이라 함은 예수님이 보여준 십자가에서의 죽음처럼 엄청난 희생과 아픔이다. 사랑은 기분 좋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기분 나쁠 때도 해야 하고 서로 감정이 상했을 때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분 나쁠 때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감정이 상한 사람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보고 성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만큼 어렵다. 아프고 하기 싫어도 참고 하는 것이다. 김창옥교수가 쇼에서 이런 비유를 들었다. "남편 분 운동 매일 하시죠? 새벽에 나가는 거 힘들죠? 그래도 참고 하시죠? 운동을 해야 하니까? 사랑도 그렇게 하세요. 아내한테 그렇게 하세요." 굉장히 신선했다. 짧은 가르침이었지만 정말 정확한 표현이었다.

부부가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누는 시기는 다름아닌 연애 초기 때이다. 하지만 서로에 관해 이미 많이 알고 시간이 지나면 딱히 대화할 게 없어진다. 숏박스의 장기연애 컨텐츠를 보면 분명 둘이 같이 있고 대화를 하는데 서로 휴대폰을 쳐다보면서 별 시답잖은 얘기만 주고받는다. 하지만 서로 그동안 얕은 대화만을 주고 받았다면 앞으로 더욱 마음 속에 깊은 대화까지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대화를 나눌지 더 많이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이야기를 듣고 좋은 것들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작가들과 기획자들이 매일 원고를 쓰고 컨텐츠를 만드느라 머리를 싸매고 회의를 한다. 라디오를 만들고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짜내며 얼마나 고심을 하는지 해본 사람들은 안다. 마찬가지로 매일 만나는 연인과 또 무슨 대화를 나누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정말 많이 힘든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힘들었던 이야기, 상사한테 괴롭힘 당하고 동기한테 실망한 이야기만 늘어놓기 보다는 오늘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 내 시간을 쪼개 기념일을 알차게 준비하고 가끔 편지를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랑은 힘든 것임을 잊지 말자. 사랑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를 불태우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해야지" 하는 의지가 없이는 절대로 한결같이 유지할 수가 없다. 잠깐이라도 의지가 떨어지면 금방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많은 책을 읽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만 꼽자면 이거다.
'결혼은 지루하지 하지 않은 서로 간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더 많이 더 오래 같이 있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 대화를 오래도록 평생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사람들과 늘 대화하시길 원하시지 않는가? 성경을 주셔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이야기한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나누는 것을 통해서 안정을 얻고 행복감을 느낀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즐거운 순간들을 함께 하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며 같은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젠 지쳤다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다. 한계가 왔다고 한며 이제는 하기 싫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얘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한다. 마치 다이어트를 포기하듯, 새해 목표를 잊어버리듯 사랑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는 계획을 했다면 그것을 저번달이나 저번주에 했어도 오늘 다시 해야 하고 반복해야 한다. 매순간 계속해서 잊지 않도록 다듬어야하고 지속해야 한다. 다이어트를 했다면 유지어트를 해야 하듯 사랑도 그러하다. 사랑은 어제 했다고 오늘 안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했던 사랑은 내일 하는 사랑과 똑같지 않다. 사랑은 계속 발전해나가야 하는 기술이고 능력이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진실된 사랑이 아니다. 부모님이 나를 30년까지만 사랑한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 사랑이 중간에 끊어지면 사람들은 바로 지옥에 가야 한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어야지만 진실한 사랑이다.

그리고 꼭 알아두어야 할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다. 정말 중요한 사랑의 실전편이다.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이 그것이다. 내가 크게 느끼는 사랑의 언어도 중요하지만 남이 크게 느끼는 사랑의 언어를 잘 알고 내가 크게 느끼지 못하더라도 남이 크게 느낄 수 있는 사랑을 하자. 내가 생각했을 때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나? 라고 생각할 때 제일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을 하자. 대학생 때 오랜만에 인사드린 목사님께서 나를 보며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인정하는 말을 크게 느끼지만 아내는 봉사를 크게 여겼다. 배려해주는 만큼 배려를 받는 것을 원했는데 나는 배려를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은 참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쉽기도 하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한 번 시작한 사랑을 끝까지, 영원히 이어나가야 한다. 인간이 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장엄한 사랑을 하며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처럼 되어간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사랑을 받고 베풀며 완전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처럼 변해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상처입어 좁아지는 마음을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넓혀가자.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고 사랑하는 것이 주를 위한 삶, 영광스러운 삶이다. 사랑을 더욱 배우고 알고 서로 사랑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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