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학교생활

땅이 되어주세요

CT's Diary 2025. 5. 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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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 생활을 하니 학교에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내 학교 생활이 교회 안에서도 다 드러나겠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확실히 더 긴장하고 잘 하려고 노력하게 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 학생은 교회에서 나를 피해다닌다. 특별히 학생이 학교 생활 하면서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부끄러운지 내가 보이면 피한다. 그 학생이 좋다 보니 학부모이신 아버님, 어머님이 더 좋기도 하고 더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이 상담을 요청하셨다. 아들이 힘들다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는데 혼내는 것도 한 두 번이고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봐주고 이해해줘야 하는지 언제 엄하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질문을 할 때도 성의없이 대답하고 잘 모르겠다고 하는 아들로 인해 마음을 힘들다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긴 상담 시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드렸지만 마무리 할 때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님. 땅이 되어주세요. 아드님이 안전하게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그런 땅이 되어주세요."
이제야 신생아를 벗어난 아들을 키우는 내가 하기에는 주제넘은 말일 수 있지만 누구보다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딛는 이 땅이 얼마나 중요한가? 2016년에 경주, 포항 지진이 있었다. 당시 월요일 대학부교제를 하던 중 교회당 건물이 흔들렸고 카톡도 안됐던 기억이 난다. 잠깐이었지만 굉장히 무서웠다. 그 당시에 큰 진동으로 집 밖을 뛰쳐나온 사람들은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집 안이 흔들리는 그 느낌이 사람을 엄청난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한 것이다. 단단하고 튼튼할 것 같던 땅이 흔들린다는 건 사람들을 엄청난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사람은 흔들리는 장소에서 편안하게 살 수 없다. 배멀미를 겪어본 사람들은 먹지도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하는 그 엄청난 고통에 힘들어한다. 게다가 요즘은 고층빌딩에 사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높은 건물은 단단하게 서 있는 게 아니라 지진이나 강풍에 대비해 조금씩 흔들리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데 30층 높이 이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유산율이 4~5배 증가하고 뇌파의 문제로 학습능력이 20~30% 떨어지고 수면에도 큰 지장이 있다고 한다. 사람은 땅에 가까이 살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단단한 땅에서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고 하셨지 모래 위에 집을 짓지 말라고 하셨다. 바람만 불어도 이리저리 날리는 모래는 거센 홍수가 올 때 모두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영원한 반석이 되어주겠다고 하셨다. 우리의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는 것이다. 비바람 몰려와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우리의 신앙을 예수님 앞에 든든히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힘든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땅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라는 드라마에서 극중 강지원은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힘들어했고 대학에서 극중 유지혁을 만나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발을 딛고 서있는데 배가 계속 흔들려. 나는 안정되고 싶은데 땅을 밞고 싶은데."
둘은 회사 동료로 다시 만나게 되고 회사 워크숍을 가는 날 유지혁은 강지원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땅이 되고 싶었어요."

사람에게는 땅이 필요하다. 내가 안정되게 세상을 살 수 있기 위한 땅 말이다. 그 땅이라는 것의 의미는 나를 전적으로 사랑해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극 중 강지원의 어머니는 바람을 폈고 아버지는 시련의 아픔을 겪다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게 되었다. 친구 정수민은 강지원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남편 박민환은 정수민과 바람이 났다. 회사에 들어가 유지혁 부장과 사귀게 되었을 때 엄마라는 사람은 딸에게 와서 돈을 요구했다. 그녀의 첫 번째 삶엔 땅이 없었지만 두 번째 삶에서는 그녀의 땅이 되고 싶어하는 유지혁을 만나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된다.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켜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야 안정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제 4개월이 된 아들은 안겨있는 것을 많이 좋아한다. 아직 혼자 안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이기에 누워만 있는 것이 싫을 때마다 안아달라고 운다. 잠깐 분유를 타려고 자리를 비우면 그렇게 서럽게도 운다. 학생들에게도 부모님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학생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부모님의 편지를 줄 때마다 꼭 우는 학생들이 있다. 사춘기가 빨리 오는 5~6학년 학생들일지라도 학교에서 본인이 잘못한 것들을 부모님과 함께 상담한다고 하면 절대 얘기하지 말아달라며 부탁한다. 아직도 부모님한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사랑해'이다. 학생들은 나한테 자기들은 애기 아니니까 애기라고 부르지 말라 하지만 그 마음 속엔 부모님들이 꼭 안아주기를 원하는 애기 같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가족끼리만 즐겁게 지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유치원도 가야 하고 학교도 가야하고 좀 더 크면 직장도 다녀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부딪히고 상처받고 힘든 일도 겪게 된다. 그럴 때마다 치료받고 위로받을 수 있어야 계속해서 힘든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을 해낼 수 있다. 요즘 1인 가구가 천만을 돌파한 대한민국이 걱정되는 이유는 힘든 사회 생활을 하며 흔들리는 사람들이 혼자서는 안정된 삶을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온전한 가정이 존재하고 가정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땅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제일 높은 이유가 흔들릴 때마다 서로를 단단히 지지해주는 땅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고 하교 후에 부모님께 달려가 자기 억울함을 털어놓는다. 만약에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부모님이 안 계시다면? 아마 마음 속 울분을 다른 곳으로 표출하며 교사들을 곤란하게 할 것이다. 나도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에서 어떤 형이 "왜 살아?" 라고 질문을 여러 번 했었는데 기분이 나빴다. 그 형한테 대답도 못하고 곧장 집에 와서 어머니께 펑펑 울면서 하소연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와 싸우고 집에 들어왔을 때 부모님이 안 계신 적이 있었는데 옷장문을 마구 열고 닫으면서 분을 풀었던 적이 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옆에서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은 더욱 거칠고 폭력적이게 된다. 지하철에서 마구 욕설을 하는 중년 남성을 껴안아 주던 청년의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흔들리는 마음을 디딜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진정 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장면이어서 인상깊었다.

학생들은 6학년만 되도 교사인 나보다 더 키가 큰 경우도 많다. 중학생이 되어 학교에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거의 성인으로봐도 무방한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참 놀라웠다. 제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왜 왔는지 물어보는데 다들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어요 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진짜 이 아이가 날 찾아온 이유는 나한테 칭찬받고 싶어서이다. 자기가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키도 크고 멋있어지고 공부도 더 잘하고 똑똑해졌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교사가 되고 나서 이걸 자랑을 하고 싶었고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담임선생님들께 연락했었다. 학생들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게 친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집에서는 그렇게 반항하고 말 안 듣는 부모님께 정말 많이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하고 학교에서 만날 잘못하면 혼내기만 하는 선생님께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전주로 대학을 다니던 시절 방학 때도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나는 살면서 아버지께 크게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내가 활동한 만큼 내 재능을 인정받았다. 동기들과 춤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춤을 잘 춘다고 인정받았고 남학생 치고 성적이 좋다고 칭찬받았다. 얼떨결에 들어간 남성중창동아리에서도 노래 좀 한다고 인정받았고 특히나 전주에서 다닌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인정받아 주변 분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을 때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을 아버지께 이야기하더라도 늘 시원찮은 반응이셨고 그래서 인정에 목말라하며 다른 곳에서 그런 것들을 채우려고 애썼던 내 예전 모습이 문득 부끄러울 때도 있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직도 나는 아내에게 인정받으려 애쓴다. 뭔가 작은 일을 하더라도 칭찬받고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고 아내가 시큰둥하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나에게도 이렇게 내가 잘하는 걸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애기 같은 마음이 가득하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애기가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지겹게 느끼는 순간이 바로 사춘기이다. 사춘기의 정확한 의미는 부모님 없이도 살아보려는 의지와 시도, 좋게 말하면 독립심을 기르는 시기이다. 부모님이 시킨대로 살아왔던 인생에서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려는 것이다. 기숙사에서 살 때 살짝 외로웠던 것도 맞지만 동시에 정말 행복했던 이유는 부모님께 간섭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어서 정말 편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적절한 인정과 적절한 자유를 누려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너무 인정받고 사랑받으려는 애기 같은 마음만 많아도 안되고 너무 혼자 알아서 다 하려는 독립심만 강해도 건강한 사람으로 살 수 없다. 지금도 수많은 부모님들과 학생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사회에서 꼭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나는 부모님을 떠나 성인이 된 이후로 전주에서 편안한 삶을 살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부모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모든 사람 다 마찬가지이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지만 동시에 간섭으로 느껴지는 그 사랑에서 벗어나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이 두 가지 마음이 계속 싸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올바르고 절제된 인생을 사는지 아니면 방탕한 인생을 사는지 결정이 되는 것 같다.

상담을 하면서 말씀드렸던 이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어머님. 아드님이 몸은 다 큰 것 같지만 꼭 잊지 마세요. 아직 애기입니다. 어머니한테 제일 인정받고 싶고 칭찬듣고 싶어하는 애기에요. 그래서 오늘 하루 동안에 대화를 나누실 때 찾기가 힘드시더라도 잘 한 것이 있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꼭 칭찬해주세요. 다른 아이들이 다 한다고 해도 사실 그게 당연한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또 인정해주셔야 하는 것이 이제 아드님이 자기가 부모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립심이 생기는 시기입니다. 곧 있으면 대학가고 직장잡고 독립할 나이가 됩니다. 아드님 떠나보낼 준비하신다고 생각하시고 혼자 이것저것 하는 일에 있어서 믿고 기다려주세요.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인 것을 알지만요. 저도 알아서 하고 싶은데 부모님께서 계속 옆에서 조언해주신다고 하시면 그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아드님이 하는 일에 응원과 격려를 해주시고 계시면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다시 올 겁니다. 이렇게 해서 잘했다고 이렇게 해서 실패했다고 그럼 그 때 칭찬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도와주세요. 아드님 마음 속에는 애기가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부모님 없이 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가득합니다. 밖에서 실패하고 외줄에서 떨어져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땅이 되어주세요. 저도 제 아들에게 그렇게 하려 합니다."

땅이 되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스스로 단단해져야 하고 흔들리는 사람이 디딜 수 있게 내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디딜 수 있는 땅이 된다는 것은 밟힌다는 것이다. 밟히고 아프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달려갈 수 있게 그렇게 서로에게 땅이 되어준다면 이 험난한 세상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스스로 말해본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땅이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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